도서관 문화강좌에서 네이버 밴드로 열흘 동안 시 필사하기에 참여했다. 내일은 어떤 시나 찾아올까하는 설렘을 주었다.단상은 빼고 몇 편만 인증으로 올려 보려고 한다. 자꾸 띄어쓰기가 틀리고 조사도 내 마음대로 넣고 하는 바람에 여러 번 써야 했다. >.< 필사를 하니 좀더 짙은 감정과 감동이 느껴져 열흘간의 시 필사 경험이 참 좋았다. 시 전문을 다 쓰는 일은 정말 드물었는데 자주 써 보아야겠다.
좋은 날
- 천양희 -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
새들이 언제 허공에 길 있다고 발자국 남기겠습니까
바람이 언제 정처 없다고 머물겠습니까
강물이 언제 바쁘다고 거슬러 오르겠습니까
벼들이 언제 익었다고 고개 숙이지 않겠습니까
아이글이 해 지는 줄 모르고 팽이를 돌리고 있습니다
햇살이 아이들 어깨에 머물러 잇습니다.
무진장 좋은 날입니다.
부부
- 함민복 -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개미핥기
황인숙
풀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답이 두렵기에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끓는 문제들
개미에 시달리지 않고
쫓기지 않고, 개미를 미워하지 않고
그러기 위해 나는 날름날름
개미를 삼킨다
위장의 일로 넘겨버린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여전히 끓는 개미 떼
나는 또 다시 날름날름
개미는 나의 양식
입속이고 뱃속이고 따끔따끔 뜨끔뜨끔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간 당신...., 킥킼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지평선
김혜순
누가 쪼개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낮과 검은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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